침묵하시는 하나님 2010,11,17
합 1:2-4, 2:20 3:17-19
서론
옥스퍼드의 논쟁
아우슈비츠에서의 고통...
고리텐붐의 고백
인도네시아의 아픔...
필립 얀시 What is God for?
본론
1. 하나님은 침묵하시나요?
2. 하나님의 때... 기다림이 필요하다.
3. 고통 가운데서도 찬양할 수 있는가?
4. 시간이 흐르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는다.
결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라.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고통당하신 예수를 외면하셨던 하나님
그러나 그 예수에 대한 철저한 외면이 예수의 부활을 낳고
인류의 모든 죄로부터의 해방을 낳았다...
2007년 옥스퍼드 교정에서 두 명의 천재가 다음의 주제로 치열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존재하시는가? 그럼 왜 하나님은 우리 주위에 있는 악이나 고통에 대해서 때론 침묵하시는가? 2006년에 “만들어진 신”이라는 저서로 스타 진화생물학자의 입지를 굳힌 옥스퍼드 뉴 칼리지 교수 리차드 도킨스는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갈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칼 바르트를 잇는 위대한 복음주의 신학자 옥스퍼드 위클리프 홀 학장인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저서 “도킨스의 신”을 통해서 도킨스의 무신론에 대해서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무신론대 유신론, 이러한 무신론적인 공격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현대에는 독일 나치에 의해서 자행된 600만명의 학살,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이러한 나치의 악행과 유대인의 고통이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 회의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아우슈비츠 교도소장 SS친위대 고위 간부인 루돌프 헤스는 독실한 카톨릭인이었으며, 유한 성격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유대인들을 죽이는데 앞장선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실에 수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왜 이러한 상황에 침묵하고 계시는가? 이러한 고통을 왜 그대로 보고만 계시는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 아우슈비츠 같은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네덜란드 여인인 고리텐붐은 수용소에서의 느꼈던 하나님의 침묵하심에 대해 고통을 느끼면서 그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녀는 성경을 깊이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존재와 그 임재를 깨닫고 케더린 쿨만과 같이 20세기를 빛낸 위대한 여자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20세기의 수많은 자연 재해, 화산폭발, 쓰나미, 지진 앞에서 고통을 당한 수많은 사람들이 고리텐붐과 같이 하나님의 침묵하심에 대해서 힘들어하고 괴로워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필립 얀시는 그 자신이 자연 재해 현장에 직접 가서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며, 하나님은 그들에게 과연 필요하신가, 하나님은 살아계신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은혜를 찾아 길을 떠나다”라는 책을 통해 자신의 신앙 고백을 털어놓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침묵을 통해서 말씀하시며 하나님은 그들에게 필요하다.”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들도 여러분들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계십니까? 앞에서 이야기한 것 같이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고통 가운데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절망한 자신을 바라본 적이 없으십니까? 왜 나는 이러한 고통을 당해야 하며, 하나님은 이러한 고통 가운데 침묵하시는가 고민한 적이 없으십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여전히 필요한 분으로 다가가십니다. 그럼 우리는 이러한 고통 가운데서 어떻게 우리의 신앙을 지켜야 합니까? 숨막히고 답답하고 살아가기 힘든 상황에서 하나님은 왜 우리를 내버려두시는 것 같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겠습니까? 이에 대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고통 속에서도 여러분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 하박국은 다른 예언자들처럼 아무런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갑자기 하나님을 말씀을 받은 예언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질문과 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예언자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가 묵시를 통해서 하나님께 질문하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런데요. 하박국은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는 왜 하나님이 자신과 자신의 백성을 이러한 고통 가운데 버려두셨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 하박국 1장 2-4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합 1:2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합1:3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합 1:4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여러분들이여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인 바벨론에 의해서 자신과 자신의 민족이 당하는 고통에 아무런 반응이 없으시며 침묵하고 계신다며 하나님께 질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고통가운데 있다는 것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것이라고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여겼던 존재가 이러한 고통 가운데서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하박국이 처한 현실이 그러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이 침묵하고 있다고 느끼는 이 고통의 고통 속에서 반응하는 하박국의 태도입니다. 하박국은 다른 무신론자들처럼 하나님이 이러한 고통 속에서 침묵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안 계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반응을 기다리면서 인내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왜 우리에게 응답하지 않으시며 우리를 이러한 고통 가운데 버려두십니까? 여기서 믿음의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믿음이 좋은 것을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라고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은 후에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으시면 나쁜 하나님, 옳지 않은 하나님이라고 치부해버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 것은 믿음의 본질이 아닙니다. 극한의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꾸로 하나님께 이러한 상황을 솔직하게 내려놓고 그 것을 견디다 못해 눈물로 호소하는 것도 믿음의 표현입니다. 여러분들이여 목을 죄는 듯한 고통 가운데 계십니까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하나님께 매달리십시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부르짖음과 매달림에도 어느 때에는 침묵으로 일관하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박국만이 이러한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침묵을 고민하고 이에 대해서 언급한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진 중 한 명인 예레미야도 그러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면서 동족들에게 바빌로니아 제국의 앞잡이라는 말을 들어야 할 만큼 큰 시련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다가 민족의 배신자로 낙인찍혀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으며 무수한 매를 맞기도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왜 저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데, 이러한 고통을 당해야만 합니까? 제 고통에 대해서는 왜 하나님이 아무런 반응이 없으신 것입니까? 예레미야의 이러한 질문에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그러자 예레미야는 이렇게 반응합니다. 렘 20:14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20:15 나의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당신이 득남하였다 하여 아버지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 렘 20:16 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무너뜨리시고 후회하지 아니하신 성읍 같이 되었더면, 그가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니 렘 20:17 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머니를 내 무덤이 되지 않게 하셨으며 그의 배가 부른 채로 항상 있지 않게 하신 까닭이로다 렘 20:18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 하니라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보인 예레미야가 믿음이 없던 예언자라고 보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은 예레미야를 모든 예언자들의 전형이요, 하나님의 충실한 종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예레미야와 같은 예언자들 중에 하나로 본 것과 일치합니다. 마태복음 16장 14절입니다. 마 16: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 것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들인 예언자들 중에서 으뜸인 예언자라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이러한 예레미야도 고통 속에서 하나님에게 호소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만 이러했습니까?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모범을 보여준 욥도 그러했습니다. 욥은 그의 잘 나가던 인생가운데 갑작스러운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극한 고통을 욥에게 허락하셨으며 그 고통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욥기 2장 3절입니다. 욥 2:3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 이러한 하나님의 시험에 대해서 욥은 자신의 온전함을 지키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 자신의 삶에 대해서 불평하였습니다. 욥 3:1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욥 3:11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욥 30:19 하나님이 나를 진흙가운데 던지셨고 나를 티끌과 재 같게 하셨구나 욥 30:20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 주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다. 욥 30:23 내가 아나이다 주께서 나를 죽게하사 모든 생물을 위하여 정한 집으로 돌려보내시리이다. 욥19:6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 욥 19:7 내가 폭행을 당한다고 부르짖으나 응답이 없고 도움을 간구하였으나 정의가 없구나 욥 19:8 그가 내 길을 막아 지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내 앞길에 어둠을 두셨으며 욥 19:9 나의 영광을 거두어가시며 나의 관모를 머리에서 벗기시고 욥 19:10 사면으로 나를 헐으시니 나는 죽었구나 내 희망을 나무뽑듯 뽑으시고 욥 19:11 나를 향하여 진노하시고 원수같이 보시는구나 욥 19:12 그 군대가 일제히 나아와서 길을 돋우고 나를 치며 내 장막을 둘러 진을 쳤구나.
고통 속에서 힘겨워하는 우리에 대해서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을 경험한 우리는 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하박국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합 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합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정한 때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이여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계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시계에 따라서 하나님의 계획하신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그 시계에 정해진 그 때가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더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여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시계에 적혀진 그 때는 기다리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기다림은 바로 무엇입니까? 그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합 2:4 하반절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합 2:4 하반절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의 시계에 적혀진 그 때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그 때에 맞추어서 여러분들의 행사를 이루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신뢰하십시오. 무신론적인 사상이나, 다른 신적인 존재에 빠지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 있는 우상들의 헛됨과 무능력함을 지적하면서 하나님은 하박국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합 2:20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리라 하시니라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때와 함께 잠잠히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지켜보며 잠잠히 있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그렇다면 그 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십니까? 먼저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괴롭게 하는 그 고통의 근원에 대해서 심판하십니다. 다니엘 8장 19절의 말씀입니다.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시작 단 8:19 이르되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에 될 일을 내가 네게 알게 하리니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임이라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역사를 주관하심을 깨닫지 못하고, 교만하고 자긍하여 자신의 행위를 일삼는 악한 자들에 대해서 부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박국이 그렇게도 궁금해하였던 악인들에 대한 종말을 심판으로 반드시 매듭 지으십니다. 수많은 시편과 잠언들은 하나님의 악인들의 심판하심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욥 36:6 악인을 살려두지 아니하시며 고난 받는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며 시편 32:10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잠 3:33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잠 5:22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잠 12:7 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들의 백성들을 괴롭게 하는 악인들의 종말을 심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들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하십니다. 시편 102편 13절과 이사야 40장 1절입니다. 시 102:13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라 정한 기한이 다가옴이니이다 사 40: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러한 위로가 단순하게 시편과 이사야서에 기록만 되어 있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정한 때를 정하시고, 그 정한 때에 맞추어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이러한 정한 때와 구원의 역사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예레미야와 에스라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확정하셨습니다. 렘 25:1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안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 렘 25:13 내가 그 땅을 향하여 선언한 바 곧 예레미야가 모든 민족을 향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라 스 1:1 바사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나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 말씀이 무엇을 뜻합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킨 바벨론의 그 죄악이 하나님께 상달되었고, 하나님께서 바사를 통해 그 바벨론을 멸망시키시고, 바사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켜 성전을 재건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정한 기한을 70년으로 정하셨습니다. 실제로 바벨론에 의해서 기원전 586년에 유다 왕국이 멸망한 이후에 기원전 515년에 스룹바벨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된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여 주위의 환경으로 인해 고통 중에 있으십니까? 나라를 잃어버리고, 떠돌이 생활을 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궁극적으로 구원하셨던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하박국의 고백처럼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의 정한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이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그 고통 중에 있는 기다림과 인내를 수반하기에 괴롭습니다. 아픕니다. 가슴이 찢어집니다. 가슴에 피멍이 듭니다. 시편 기자들은 이러한 가슴 앓이를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시편 3: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시편 3:2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셀라) 시편 6: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시편 6:7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또 다른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시편 13:1 여호와여 어느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아니까 13:2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시편 88:13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 88:14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
오늘 본문의 주인공 하박국의 심정도 이러한 시편 기자들의 심정과 동일하였습니다. 하박국 당시의 유다 왕국은 바벨론에 의해서 처참하게 파괴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기원전 6세기 초 유다 지역이 미스바와 벧샨, 유다 산지 북쪽 지역 일부를 제외하고 불에 탄 고고학적인 증거를 통해서도 확증됩니다. 바벨론은 고대 근동의 패자가 되면서 무자비하게 권력을 휘두르며, 모든 기자재를 바벨론 수도 바빌론의 건축 사업을 위해서 사용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서 나라를 빼앗긴 유다 백성들은 그 황폐한 땅에 남아 살아가면서 착취를 당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하박국 3장 16절입니다.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시작 합 3: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그런데요. 하박국의 이 구절에 바로 이어져 나오는 노래가 우리에게 귀한 도전을 안겨줍니다. 우리가 다 같이 잘 아는 구절입니다. 또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합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3: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3: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들은 이러한 외부적인 환경으로 인한 처절한 고통 가운데에서 감사의 노래,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고통 가운데서 하박국과 같은 찬양을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마음에 우러져 나오는 찬양과 함께, 미래를 기대하는 마음을 올려드릴 수 있습니까? 진정으로 그리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이여 하박국의 찬양에서 여러분들의 믿음에 귀한 도전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그릇을 키워가시길 바랍니다. 하박국처럼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든지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할 수 있길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들이여 이 모든 과정들을, 즉 하나님이 우리를 빚어나가기 위한 과정으로서 이러한 고통들을 허락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버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여러분들을 구원하시며 회복하시는 분이십니다. 다만여러분들의 고통 속에서 여러분들을 단련하기 위해서 그 아파하시는 가운데서도 침묵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내리신 일종의 시험에도 욥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자, 욥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욥이 이 고통 중에서 하나님을 뵙고 자신의 믿음이 주님 앞에서 성장하게 되었음을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욥 42장 4-5절입니다. 욥 42: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또한 하나님은 욥에게 갑절의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욥 42: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욥 42:13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이러한 욥기의 기록은 우리와 동떨어진 어느 고대 인물의 전기가 아닙니다. 이 욥기의 기록은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도 동일한 효력이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종국에는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주저 앉지 마십시오, 좌절하지 마십시오, 꿈을 잃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매달리십시오. 하나님께 눈물로 호소하십시오.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하나님은 기필코 여러분들을 그 좌절과 절망의 늪에서 이끌어내셔서 저 높은 곳으로 올리실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요, 부활의 종교입니다. 그 것은 기독교의 핵심이 죽음이 있어야 온전한 부활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유일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낮고 천한 몸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아들이자,또 하나님이신 그 분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3년간의 공생애를 감당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신 그 분은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사람들의 욕과 비방거리를 참으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온 몸이 찢겨지는 아픔과 함께, 그 순간 아버지 하나님의 버리심, 그 침묵하심이라는 극한의 고통을 경험하셔야만 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예수님의 절규하심을 하나님은 그 순간 외면하셔야만 했습니다. 그 외면 속에서 죽어간 어린양 예수는 그 온전한 죽으심을 통해서 부활의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고통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지신 고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고통을 하나님 앞에서 달게 받으며 인내하셨기 때문에 그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습니다. 그 부활의 의미를 기대하며 또한 살아계신 그분의 때를 기다리며 지금의 고통을 인내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또한 침묵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를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