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22 수요예배 설교전문.
우리 안의 바알을 깨부수어라
이삭 전도사
서론: 오늘날의 세태. 돈과 권력, 쾌락과 방종
본론:
1.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다.
출애굽한 백성들의 계약.
오늘날의 우리
2.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는데, 아직도 바알을 숭배하는가?
바알은 무엇인가: - 성경 주해.
오늘날의 바알은 무엇인가: 오늘날과 연관된 해석.
3. 여호와의 성전을 수직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회복하십시오.
오늘날의 우리.
4. 요아스의 왕위 즉위: 다윗 가문의 회복.
그래야 우리 안에 성령이 왕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결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들, 먼저 우리 안에 바알을 깨뜨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회복하여, 우리 안에 성령을 회복하십시오.
요즘 신문 기사에서 한창 정치적인 이슈들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총리인준과 그 외의 장관들 인준입니다. 이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들이 많지만, 특히 공직을 맡는 사람의 도덕성 즉 인간의 도덕성이 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번 총리 인준에서 불행히 안 좋은 사안들이 공개되어, 국민들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국민들을 위해서 일해야 할 사람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을 부리고, 자신의 재산을 불리는데 있어서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의 도덕성 척도는 권력과 돈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권력과 돈에서 우리 자신이 정직하지 못하고 노예가 된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위와 같은 사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우리도 이 권력과 돈의 노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역사 이래로, 권력과 돈에 대한 많은 담론들이 있었습니다. 그 담론들이 내리고 있는 공통적으로 내리고 있는 결론이 이것입니다. 인간은 권력과 돈을 좇는 존재이다. 그 어느 누구도 권력과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권력과 돈에만 자유롭지 못한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터넷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신문 기사들 중에서 젊은이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기사들은 연애 문화 기사들입니다. 그런데 이 연애, 문화 기사들은 대부분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기사들로 가득합니다. 요즘 미디어는 사람들에게 쾌락과 방종을 무언의 지시로 강요하고 있습니다. 시각적으로 화려한 이미지들, 물론 이 이미지들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들이 돈과 결부되어 있고 그 것들이 소비를 부추기는데, 이로 인한 쾌락과 방종의 길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선정적인 이미지들과 도양들이 광고와 같은 미디어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악한 세대입니다. 롬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6.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7.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이 악한 세대의 특징을 나열하면 한도 끝도 없지만 여기서 앞에서 지적한 두 가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바로 돈과 권력 그리고 쾌락과 방종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우리에게 강력한 도전과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 백성이 되었다면 우리 안에 순결함이 있는지 여부를 우리 자신이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전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먼저 오늘의 본문 17절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왕하 11:17 여호야다가 왕과 백성에게 여호와 언약을 맺어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하고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하매 오늘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를 물어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자신과 상관이 없던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셨고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아브라함의 자손들 중에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고, 그들로 하여금 광야생활을 체험케 하시면서, 시내산에서의 계약을 체결하셨습니다. 그 계약이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롬 4: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우리는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에 대해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벧전 1:11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2.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이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오늘의 주인공인 요아스와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언약을 맺었던 것처럼, 우리가 주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 언약을 맺었으면,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것은 우리의 소욕 즉 정욕을 제어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무자비하게 들릴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강력한 말씀을 이야기해줍니다. 오늘 본문 18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왕하 12:18 온 백성이 바알의 신당으로 가서 그 신당을 허물고 그 제단들과 우상들을 철저히 깨뜨리고 그 제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니라 제사장이 관리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을 수직하게 하고. 열왕기 저자는 하나님과 계약을 갱신한 요아스와 유다 백성들이 바알과 관련된 모든 것을 진멸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알은 무엇입니까? 바알은 고대 근동 지역 중에 아람 지역 지금의 시리아 이남 지역에서 성행하던 풍요와 쾌락의 신입니다. 고대 근동의 여러 비문들과 기록들은 바알 신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바알은 구름을 몰고 다니고 비를 부르는 신으로 묘사됩니다. 뿐만 아니라,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는 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바알신이 고대 아람 지역 이남의 주신이었습니다. 이 바알신이 고대 근동 지방의 주신이면서, 풍요와 쾌락의 신으로 알려진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시 고대 아람 이남 지역은 오날날과 같이 강수량이 많지 않은 지역이었습니다. 특히 고대와 같이 농경문화인 지역은 한해 농사 결과에 따라서 생사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비를 부리는 신인 바알신의 존재는 대단하였습니다. 고대 인들은 바알신의 역사에 따라서 그들의 풍요로움이 걸려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알 섬기는 의례가 문제였습니다.고대 근동 사람들은 이 바알을 섬길 때 그 종교 의례 중에 음란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하늘을 남자 신, 땅을 여자 신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남자 신인 바알 신이 여자 신인 아세라와 성적인 교접을 하면 비가 만들어 지고 그 것이 대지에 뿌려져서 또 다른 생산물을 얻게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비를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종교 의식 중에 고대 사람들은 남자 창기들과 여자 창기들과 성행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바알 종교의 전통이 바로 북이스라엘의 아합 시대에 들어왔습니다. 왕상 16:29 유다의 아사 왕 제 삼십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 이십이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30.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3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32.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이 바알 종교의 전통은 북이스라엘 왕국 뿐만 아니라 남 유다 왕국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왕하 9:16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 오년에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었을때에,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니라 18. 그가 이스라엘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가서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25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 십이년에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니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이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이더라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그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러라. 하나님은 이 바알 종교를 지극히도 미워하셨습니다. 북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섬겼기 때문에 그의 집안을 멸하신 하나님은 아합을 여로보암보다 더 악한 왕으로 평가하셨습니다. 이 바알 종교를 섬기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바알 종교를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 왕들이 받아들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의 정욕과 소욕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바알 종교의 중심지는 시돈 즉 페니키아의 식민지 도시 국가였습니다. 페니키아는 나중에 로마와도 3차에 걸친 포에니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부강한 나라였습니다. 그들은 물길이 익숙하였기 때문에 지중해를 장악하고 해상무역으로 막대한 자금을 축적하였습니다. 아합은 이러한 페니키아와 손을 잡고 북 이스라엘에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였습니다. 그 일환이 바로 페니키아와 정략 결혼이었습니다. 그리고 아합은 이세벨의 육체적인 매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세벨의 요청에 눈과 귀를 기울였습니다. 아합은 이세벨의 요청에 따라 여호와의 예언자들을 핍박하기 시작하였고 심지어 죽이기 까지 하였습니다. 아합은 이세벨의 꾀임에 넘어가 자신을 파멸의 길로 몰아갔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왕상 21:25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 유다 왕들도 이러한 아합의 절차를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유다 지역에도 바알 종교가 만연하게 되었고 특히 요아스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아달리야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유다의 왕이 되면서 이러한 상황이 더욱더 심화되었습니다. 왕하 11:1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리야가 그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자손을 모두 멸절하였으나, 11:3 요아스가 그와 함께 여호와의 성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리야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이들이 이렇게 바알 종교를 받아들인 것은 바로 현실적인 문제 즉 시돈과의 동맹을 통한 정치적인 안정을 통한 권력 구도 강화와, 중계 무역의 부수익을 통한 풍요로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이 정치적 안정과 풍요로움 속에서 하나님을 저버리고, 더욱이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였으며, 쾌락을 추구하였습니다.
이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까? 성경은 여러분에게 강력하게 요청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바알을 깨뜨려라. 깨부수어라, 철저히 깨뜨려라. 그렇다면 우리에게 바알은 무엇입니까? 그 것은 바로 우리 소욕입니다. 돈과 권력, 그리고 쾌락과 방종입니다. 아합은 이 돈과 권력, 쾌락과 방종을 따라가다가 죽음을 면하지 못하였고, 그들의 자손이 모두 개와 새들의 밥이 되는 신세를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왕상 21:21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왕상 21:24 아합에게 속한 자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고 하셨느니라 하니. 사랑하는 여러분들, 우리는 우리 안에 바알을 깨뜨려야 합니다. 우리 안의 바알을 깨뜨리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아합의 가문은 아합 이후에 쓸어버렸듯이 우리 후손의 대에 그의 진노의 잔을 부으실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의 진노의 잔을 부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깨달으십시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있는 정욕과 소욕에 대해서 성경은 어떻게 증거하고 있습니까? 사도 요한은 이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육신의 정욕과 안목과 정욕과 이생의 자랑!! 이 것이 우리에게 있는 소욕입니다. 그리고 이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돈과 권력, 쾌락과 방종으로 나타납니다. 여러분들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솔직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어떨 때에는 돈을 더 사랑한 적이 없습니까? 우리는 하나님보다 어떨 때에는 권력을 더 우선시 한 적이 없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보다 쾌락을 더 우선시 한 적이 없습니까? 우리는 하나님보다 방종을 더 우선시 한 적이 없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바알을 깨뜨려야 합니다. 여러분들이여 기억하십시오. 철저히 깨뜨려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우상들을 제거하여야 합니다.우상만이 아니라, 그 신상도 그 제사장들도 아주 철저하게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죄의 속성들을 제거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것을 지금 여러분들에게 요구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요한 사도를 통해서 이렇게 권고하셨습니다. 요일 1:10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11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안에 바알을 깨뜨리는데 있어서 우리가 철저히 깨어지며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깨어지며 회개하면 하나님은 다시 우리를 회복하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요아스는 제사장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성전을 수직하게 합니다. 오늘 말씀 중 18절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왕하 11:18 온 백성이 바알의 신당으로 가서 그 신당을 허물로 그 제단들과 우상들을 처절히 깨뜨리고 그 제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니라 제사장이 관리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을 수직하게 하고 여호와의 성전 수직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소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악 됨을 내려놓는 장소입니다. 요아스는 유다 왕국에 만연하였던 바알 종교를 깨뜨리고 주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 무너졌던 여호와의 성전을 수직하였습니다. 다시 여호와의 성전을 세웠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으로 다가 가십니다. “너의 죄악을 털어놓고 내게 마음을 열어주렴.”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여러분들 안에 성령님이 다시 들어가길 원하십니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이처럼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성전을 수직하기를 원하십니다.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내게 더 다가오지 않으련? 참 많이 힘들었겠다. 그 죄악으로 인해 가졌던 마음의 고통과 그 수고로움을 어떻게 감당하였니? 여러분들이여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십시오. 여러분들이여 우리 안에 바알을 깨뜨리고 우리의 성전을 수직하여 주님 앞에 나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을 간구합니다.
우리 안에 바알을 깨뜨리고 우리 안에 성전을 세우길 간절히 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런데 어떤 은혜를 주실까요? 먼저 오늘 말씀 19절 읽겠습니다. 시작 또 백부장들과 가리 사람과 호위병과 온 백성을 거느리고 왕을 인도하여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려와 호위병의 문 길을 통하여 왕궁에 이르매 그가 왕의 왕좌에 앉으니. 이제 요아스는 다시 왕위에 오르면서 다윗 가문의 왕위를 다시 회복하였습니다. 바알의 정치적 지지자이고 앞잡이였던 아달리야를 죽임으로써 요아스는 다시 다윗 가문의 부활을 알렸습니다. 다윗 가문의 회복은 하나님의 약속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이러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삼하 7: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7: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하나님은 다윗 가문을 긍휼히 여기시고 요아스로 하여금 다시 그의 가문을 잇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요아스는 왕좌에 올랐습니다. 왕좌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히 1:8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1:9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왕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보좌에 오르기 위해서 기름을 부으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다윗 가문의 부활은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의미합니다. 요아스의 왕좌가 의미하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여러분들이 우리 자신의 바알을 깨뜨리고 주 앞에 나아가면 주께서 그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성령이 우리의 왕으로 우리의 심령 가운데 좌정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여 성령을 사모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결단하고 하나님을 찾으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우리를 기쁘게 해주십니다. 왕하 18:20 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온 성이 평온하더라 아달랴를 무리가 왕국에서 칼로 죽였더라.
사랑하는 하나로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지금 이 시간 당신의 자녀인 여러분들에게 강력하게 요구하십니다. “너희가 나의 백성이 아니니? 내가 내 유일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못박히도록 내버려두었고, 그를 죽여 너희 죄를 대신 담당하도록 하지 않았니? 이러한 새 계약을 맺어 내 백성이 된 너희들아. 내게로 다시 돌아오렴. 너희들이 너희 안에 있는 죄악들, 너희들의 정욕과 소욕들 즉 바알을 무너뜨리길 간절히 원한단다. 그리고 너희들이 다시금 나와의 만남을 회복하길 원한단다. 너희들이 내게 회개하고, 다가와서 너희의 마음 문을 열면 나는 너희들에게 들어갈 것이란다. 내가 너희들에게 그리스도와 성령을 다시 선물로 줄 것이며 성령이 너희의 왕으로 좌정하여 주장하도록 할 것이다. 그리하면 너희에게 샬롬 즉 온전한 즐거음과 평강이 있을 것이다.” 말씀 하나 읽고 오늘의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호세아 6장 1-3절입니다. 시작 호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6: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알아, 하나님께 나아가는 하나로 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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